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르만 그라프 (문단 편집) === 전선으로의 복귀 === 이렇듯 이전엔 꿈도 못꾸던 사치를 누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영유하던 그라프였지만 곧 그의 직권 남용과 전횡에 그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커져 갔고, 결국 1943년 여름에 영국제 고속 쌍발기인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 전투기와 연합군의 폭격기를 효과적으로 요격하기 위한 전술 실험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면서 전선으로 복귀한다. 그라프 휘하의 실험 부대는 43년 8월 15일 부로 [[JG 50]]으로 개칭 되었고 그라프가 초대 사령관을 맡아 Me 163, Me 262같은 신형 제트 전투기의 운용 시험도 하는등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나 정작 본업인 모스키토 전투기나 연합군의 중폭격기 요격에선 그라프 본인이 직접 출격해 1대의 모스키토 전투기와 2대의 [[B-17]] 중폭격기를 잡아낸 것 외엔 이렇다할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전선에 복귀하게 된 계기는 43년 10월 8일, [[JG 1]]의 사령관을 맡고 있던 [[한스 필리프]]가 미군의 [[P-47 썬더볼트]] 전투기에 격추당해 전사하면서 생긴 지휘권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자신의 휘하에 있던 [[알프레트 그리슬라브스키]]에게 JG 50의 지휘권을 넘기고 JG 1의 임시 항공단장으로 활동하게 된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JG 50의 사령관 직에 남아있었다.] 이 시기 연합군의 2차 슈바인푸르트 공습이 일어났고 77기의 연합군 폭격기가 격추당했으나 독일 공군도 46기의 전투기가 격추당하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라프는 인사이동 명령에 의해 [[JG 11]]의 지휘관이 되었고, 이 시기에 3기의 중폭격기를 추가로 격추했지만 1944년 3월 29일의 공중전에서 1기의 P-51 머스탱 호위 전투기를 격추한 직후 다른 P-51 과 공중 충돌해 추락, 가까스로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중상을 입고 말았다. 부상에서 회복한 그라프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친정 부대인 JG 52의 사령관으로 발령받아 동부전선으로 돌아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